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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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포도청 마당 (아침)


검안자가 시체에 대해 검안을 하는 게 포졸들 사이로 보인다. 

포도대장이 심각하게 보고 있는데... 정포교가 다리를 절룩이면서 다가온다. 


정포교:무슨 일입니까?

포도대장:어, 정포교... 약초꾼이 산 속에서 해괴한 시체를 발견해서 말이야.

정포교:(다가오며) 해괴하다뇨? (다가와 보곤) 이.. 이 시체가 왜....?

포도대장:그래, 자네가 참수해서 시구문에 내다버린 밀도살꾼이네.

정포교:(당황하는) 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포도대장:뭔가 곡절이 있겠지... (검안에게) 그런데 배는 왜 저렇게 꿰매져 있는 것인가?

검안인:저의 견해로는... 장부를 꺼낸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정포교:(놀라는) 서, 설마....

포도대장:죽은 자의 장부를 왜 꺼낸단 말인가?

검안인:저.... 창질(나병)을 앓는 자들이 심심치 않게 사람의 장부를 약으로 쓴다고 들었습니다. 

다들:(놀라는데) ....!

포도대장:(끄덕이며) 문둥이의 짓이라고? 흠... 

정포교:(맞장구) 그..그런 것 같습니다. 도성 근처에 문둥이들...

포도대장:아니다! 그렇지 않아. (등채로 가리키며) 봐라. 일단 칼질이 바르게 돼 있지 않나. 그리고 바느질이 일정 간격으로 돼 있다. 

다들:(끄덕이고) ...

포도대장:창질에 걸리면 머리칼이며 눈썹이 다 빠지고... 입이 돌아가고 손발이 굳어버리는데... 칼질이며 바느질을 어찌 할 수 있단 말이냐?

다들:(놀라는) ...! 

정포교:그.. 그렇다면...?

포도대장:이건 백정 놈이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백정이라도 이런 일을 함부로 할 수 없을 터! 그 중에서도 밀도살꾼이 한 짓이다! 


약초꾼과 종사관, 부장들, 포졸들, 아... 하고 끄덕인다.


포도대장:이 놈은 시신을 능욕한 아주 잔혹한 놈이다. 형조에 보고를 올리고, 좌청의 나졸들까지 다 동원해서라도 여기에 관련된 놈들을 일망타진할 것이니 너희들은 발을 분주히 놀려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네! 하는 대답 소리가 들리고 정포교, 눈 앞이 캄캄해지는데...


17. 산 일각 (낮) 


음메.. 음메... 백정이 내는 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적으로 싸인 시체를 지게로 지고 올라가는 황정... 무표정이고...

말린 거적 끝에 황정모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황정부, 이곽 외 백정들, 숙연하게 소울음을 울며 따라간다. 


18. 황정모의 무덤 (낮)


백정들이 땅을 다 파고 물러서면... 

황정 거적에 말린 황정모를 얕게 판 구덩이에 내려놓는다. 얼굴이 드러난다.

황정, 황정모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해준다... 그 위로 흙이 뿌려지기 시작하고... 


황정:아.. 안 돼...흐.. 흙이 묻잖아요... 


삽으로 흙을 퍼넣던 백정들, 멈칫하면.... 

황정, 황정모의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숨죽여 오열하는 황정부...

황정, 황정모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는 거적을 당겨 얼굴을 완전히 가려준다.

황정, 뒤로 물러서면... 흙이 뿌려지기 시작하는데.. 


시간경과. 

떼를 입히지 않은 봉분이 완성된 무덤....

황정, 절을 하고나서 무덤을 바라본다. 


황정:엄니... 이젠... 아프지 말아요.


백정들 이미 아무도 없고, 황정부와 이곽, 바라보고 서 있다. 


19. 황정집 밖 (낮)


황정과 황정부, 이곽이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황정, 갑자기 뭔가를 발견하고 멈칫하면...

황정의 집에서 정포교와 나졸들이 나오다가 그들을 발견한다. 


정포교:저 놈 잡아라! 


황정, 지게를 팽개치고 도망가는 황정...

황정부와 이곽, 당황하다가 포졸들에게 잡히고...

일부 포졸들이 황정의 뒤를 쫓는다.


20. 산길 일각 (낮)


황정 도망가고, 포졸들 그 뒤를 쫓아가는데... 

황정, 포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포졸들, 어리둥절 자리에 서 있다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고...

결국은 포기하고 돌아들 가면, 숨어있던 황정, 두려워하며 나와서 보는데... 


21. 황정의 집 마당 (낮)


황정을 놓치고 온 포졸들, 황정의 집 마당에 들어서며.. 


포졸1:놓쳤습니다. 다리에 날개가 달렸는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황정부와 이곽, 포박을 당한 상태로 꿇어앉아있다. 


황정부:대체 왜 이러십니까요? 쇤네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정포교:네 놈의 아들이 있을만한 곳을 대라! 

황정부:쇤네의 새끼가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요? 

정포교:무슨 죄를 저질러? 아들놈이 밀도살 하고 다니는 것도 여태 몰랐단 말이냐! 

황정부:(놀라고) 미... 밀도살이요? 마, 말도 안 됩니다요. 제 아들.. 놈은그럴 놈이 아닙니다... 

이곽:(놀라고) ... 

정포교:(정말 몰랐나 싶고) ... 

이곽:(집히는 게 있고) 소근개가... 아줌니 치료비를 구하려고...

황정부:(충격받고) 그 돈... 이럴 수가.. 

정포교:그 놈이 밀도살꾼이란 사실을 정녕 몰랐단 말이냐! 

이곽:네, 그렇습니다요. 

황정부:(탄식) 그 놈이... 결국 일을 저질렀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업이 이젠 허사가 되었어. 소근개 때문에 모든 게 다 틀어져 버렸어. 내가... 죽어야지... 내가 죽어야지... 


황정부, 갑자기 묶인 채 벌떡 일어나 뛰어가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쿵, 쿵, 쿵... 

정포교, 놀라고 이곽, 일어나려하면 포졸들 주저 앉히고...

포졸들, 달려가 황정부를 잡아 넘어 뜨리면,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황정부:놔두십시오. 이대로 죽어 버리게.... (누워서 버둥거리며 울고)


정포교, 답답한데...


INS) 성균관 전경 (낮)


장의E:백도양은 들어라! 


22. 명륜당 (낮)


장의(유생 대표)와 좌우에 상색장, 하색장이 서 있고...

그 뒤에 종이가 붙어있고, 표결에 붙인 듯 바를 정(`正)자들이 씌여있다. 

그 앞에 백도양이 서 있다. 그 뒤에는 제욱을 포함 유생들, 지켜보는 가운데....


장의:너는 불온한 서적을 탐닉하고도 그 죄를 뉘우치지 않아, 유교적 이념에 위배됨은 물론, 선비로서 소양을 감히 저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유생들은 만장일치로 너의 이름을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하고, 성균관에서 추방하기로 결의하였다! 

제욱:(안절부절못하고 도양을 보는데) ...

도양:(당당하고) 처분이 그러하니 이제와서 궁색하게 굴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의:뭐.. 뭣이? 네 놈이 뉘우치지는 않고... 

도양:지금 조선은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가는 난세에 다름없고, 난세에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으면, 선비는 조용히 그 곳을 떠나는 게 예이지요. 


도양, 유건을 벗어던지고 나가버리고, 장의 기가 막힌데... 


백태현:(따귀소리와 함께E) 이 천하의 불효막심한 놈!


23. 도양의 집 마당 (낮)


도양, 아버지 백태현에게 따귀를 맞았다. 

도양의 숙부뻘 식객 백규현, 마당 가운데 쌓인 서책들에 기름을 뿌리다 돌아보고


백태현:집안을 망신시켜도 유분수지. 감히 성균관에서 그 따위 소리를 지껄여?

도양:.... 

규현:(다가와) 도양이 너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빌지 못해! (하곤 바로 백태현에게) 형님, 죄송합니다. 조카 하나 제대로 단속못한 제 죄가 큽니다. 제가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겠습니다. 

백태현:(무시하고) 불 가져오너라. 

규현:그래요. 형님, 싸그리 태워버리시죠. 그래, 도양아. 불태우는 김에 서학에 물든 니 마음도 같이 태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

도양:(섬짓한 눈빛) ...!

규현:(눈빗에 기가 죽어) 흠흠... 형님, 태우는 것은 좀 그렇고... 

백태현:(하인에게 횃불 받고) 이 집에 다시 한 번 서학책을 들여놓기만 해봐라. 너를 호적에서 아주 내놓고 말겠다. (책더미에 횃불을 던진다)


책더미가 타오르기 시작한다. 


도양:(눈에 힘이 들어가고) ....!

백태현:성균관 문제는 아비가 해결해 줄테니... 너는 다시 들어가서...


도양, 갑자기 뛰어가 불 속에 손을 넣어 불붙은 전체신론을 집어든다.

모두들, 놀라는데, 도양, 불붙기 시작한 책을 손으로 탁탁 쳐서 불을 끈다. 


규현:도.. 도양아..! 

백태현:(기가 질리고) 네, 네 녀석이.... 

규현:(달려가 책을 잡는) 무슨 짓이냐! 놓아라! (손 떼는) 앗! 뜨거!

도양:송구합니다. 저는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백태현:(기가 막히고) ...!

도양:서학은 실용의 학문이고, 이것이 곧 조선의 대세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시는 것이겠지요. 

백태현:뭐어?

도양:아버님처럼 조정에 계신 분들은 세상의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자리 보전을 하려고 말입니다. 

백태현:(분노) 뭐, 뭣이? 이 놈이.. 점점... 

규현:너 정말 그 무슨 말버릇이냐! 듣자듣자 하니까...

도양:차라리 저를 내치십시오. 어머님처럼 말입니다. 

백태현:(굳어지는데) 저.. 저... 

규현:미쳤느냐? 어디 그 얘기를... (도양의 입을 막고) 형님, 도양이가 지금 제 정신이 아닌 모양입니다. 

도양:(입을 풀고) 외가가 서학을 한다는 이유로 다섯 살난 아들을 둔 어머니를 길바닥에 내치셨지요. 소자... 그 날을 똑똑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그 고고한 명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놨고, 죽게 만든 겁니다. 

백태현:(부르르 떨며) 이 놈! 당장 이 집에서 썩 나가거라!

도양:네, 나갈 참입니다. 아버님이 저까지 망치게 할 수 없으니까요. (인사를 꾸벅하고 나간다) 


백태현, 부들부들 떨고 규현, 전전긍긍하는데서....


24. 도양집 밖 (오후)


도양, 문을 닫고 나와 책을 옆구리에 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간다. 

갑자기 손에 통증을 느껴보면, 손에 화상을 입은 듯하다. 

도양, 통증을 참으며 걸어가고....


25. 숲속 작은 절간 (오후)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려온다. 

이곽,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온다. 


26. 대웅전 (오후)


도살장에서 목탁을 두드리던 늙은 중,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고 있다.

이곽, 대웅전 안으로 얼굴을 디밀며...


이곽:스님... 

늙은 중:(목탁을 멈추면) ...

이곽:혹시....소근개 여기 왔나요?

늙은 중:(목탁 두드리던 막대로 어느 한쪽을 가리킨다) ....

이곽:아, 네... (사라지면)


중, 다시 목탁과 함께 염불을 시작하고...


27. 절 뒤꼍 (오후)


이곽, 나타나면 장작이 싸여있는 곳에 황정, 멍하니 앉아있다. 


이곽:소근개.

황정:(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아... 작대야...

이곽:마을에 포졸들이 쫙 깔렸어... 

황정:(끄덕이곤) 아부지는.. 괜찮고? 

이곽:응? 으응... 근데, 포졸들이 지켜봐서 꼼짝도 못하셔. 너 빨리 도망 가라신다. 다신 너 안 보시겠대. 

황정:(착잡한 상태로 고개 끄덕이고) ....

이곽:(한숨) 어쩌자고 그런 짓을 저질렀냐. 응? 

황정:....

이곽:일어나. 빨리 떠나야지. 여기도 안심할 순 없어. 


황정, 힘없이 일어나면 이곽, 등을 두드려 주는데...


28. 집 근처 (오후)


나뭇잎 사이 원경으로 집 근처를 돌며 수색하는 정포교와 포졸들이 보인다. 

고목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정, 원경을 조금 떼고 분노감에 부르르 떠는데... 

흠칫 다시 원경으로 보면 황정부가 달려 나와 정포교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황정:(고개를 떨구고) 죄송해요... 아부지... (눈물이 차오르는데) 

이곽E:그만 가자. 오늘 도성은 벗어나야지.


나무 밑에 있던 이곽이 있고... 황정, 좌절감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29. 산길 (오후)


황정과 이곽, 길을 걸어오다가 인기척을 느끼곤 재빨리 숨는다. 

저만치에서 꾀죄죄한 양반과 봇짐을 진 하인이 산길을 넘어오고 있다. 


이곽:이런 식으론 멀리 가지도 못해. 

황정:그럼, 어떡해?

이곽:조용히 해봐.


양반과 하인, 그들 숨은 곳을 지나쳐 가고....

이곽, 그들 뒤를 살금살금 따라가는데, 황정, 뭐하려나 일어서는데...


30. 산길 일각 (오후)


망건과 동곳까지 다 빼앗긴 양반과 하인, 속곳 바람으로 이곽 앞에 쭈그려 있고... 

이곽, 한 손엔 족보씨(백정칼), 다른 손엔 옷가지 등을 들고 서 있다. 

황정, 불안해하면서 망을 보고 있다. 


이곽:나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야. 우리가 간 뒤 한 식경은 있다가 움직여도 움직여!

양반:아, 아 알았다.

하인:알겠습니다요. 

이곽:가자.

황정:(옷을 챙겨들며) 죄송합니다. (옷 옆에 있던 노자돈을 던져주고) 

양반,하인:....?

이곽:(다시 주우려는) 미쳤어?

황정:(말리곤) 옷 사입으십시오. 

이곽:(조그맣게) 제물포까지 가는데... 안 먹고 안 자냐?

황정:됐어. 빨리 가자. (획 가고)


이곽, 어찌할까 하다가 황정을 쫓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