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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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성균관 명륜당 (낮) 


박사가 뒷짐 쥐고 유생들 사이를 다니면서 강독하고 있다. 


박사: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한 것을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 


뒷자리에 있는 도양, 서책이 아닌 책상 아래에 전체신론을 보고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신체 각 장기와 인체 구조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도양, 흥미진진하게 보는데, 옆 자리에 있는 제욱, 힐끗 보곤 토할 것 같은데...

책을 확 빼앗아 드는 손. 도양이 조금 놀라 고개를 들어 보면, 박사다. 


도양:(낭패다 싶은) 스승님... 박사, 표지를 보면‘전체신론(`全體身論)’이고 넘겨보다 화들짝 놀라 착 접는다.

박사:흠흠.. 오늘은 여기까지다! (도양을 보는)

도양:(빤히 보는데) ....

박사:넌 좀 따라오너라. (가고) 


도양, 일어나 무표정하게 따라가고 제욱, 걱정돼서 일어나 보는데...

유생들, 특히 장의(유생 대표)가 무슨 일인가 관심을 갖는데...


17. 박사의 방 (낮)


박사, 서안을 사이에 두고 앉아 도양과 대화를 한다. 


박사:(책을 탁 내려놓으며) 이것은 서의학책 아니냐? (준엄한) 고담이론을 좋아하는 자, 벌을 받는다는 학령을 니가 모른단 말이냐? 

도양:이 서책은 세상을 미혹시키고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려 인간의 실체적 근본을 세세히 알려주는 서책입니다. 

박사:(분노하고) 뭐라고? 네가 나를 능멸하려 드는구나. 

도양: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박사:닥쳐라! 너완 말이 안 통하니 형판대감과 이 문제를 상의해야겠다. 

도양:(태연하게) 아버님이 그다지 좋아하진 않으시겠지요. 그보다는... 

박사:...?

도양:제가 아버님께 스승님이 매우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씀 드리는 쪽이 나을 듯싶습니다. 대사성을 하셔도 아깝지 않을 분이 고작 박사에 머물러 계시니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박사:(노려보는) ...

도양:(역시 가만히 보는) ...

박사:(점차 시선을 풀고, 헛기침하곤) 난 네가 단지 호기심 때문에 이 서책을 봤을 거라 생각한다. 

도양:하지만... 수업에 전념하지 않은 죄, 마땅히 벌을 받아야 옳을 줄로 아옵니다. (고개 숙이는) ...


18. 성균관 어느 협문 앞 (낮)


도양,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데, 맞은편에서 제욱과 장의 일행이 다가온다.


장의:(서슬이 파란) 백도양! 수업시간에 뭘 보다 걸린 거냐?

도양:(힐끗 제욱을 보는) ...

제욱:(눈에 힘주고 아니라는 표정인데) ...

장의:(추궁하듯) 예삿 서책은 아닌 것 같던데...

도양:네, 예삿 서책은 아니었습니다.


장의, 도양이 실토하는 줄 알고 일행들을 스윽 둘러보고 대답을 기다린다. 

유생들, 기대하고 제욱은 불안한데...

도양, 장의에게 뒷짐 쥔 채 다가간다. 


도양:(귓속말로) 춘화책이었거든요. 


장의, 얼굴 벌게지고 유생들과 제욱, 뭔소리를 했나 의아한데...


도양:지금 스승님께서 열심히 탐독 중이시니 장의님 차례가 오려면... 아마도 계절 하나는 지나야 하지 않을까... 풋! (웃음이 터지고) 아, 죄송합니다. 전 바빠서 이만... (휘적휘적 가면서 계속 웃는)


제욱, 양쪽 눈치를 보다가 도양을 쫄래쫄래 따라가고. 

장의, 붉으락푸르락하고, 유생들은 영문을 몰라 의아한 눈빛들이다.


19. 저자거리 (낮)


기모노에 게다를 신은 일본 사람들, 신식군인들이 지나가는 등, 개화 초기의 저자거리 풍경이 펼쳐지고... 

황정, 고기를 실은 지게를 지고 걸어가고 있다.


20. 청계천 역관동네 일각 (낮)


기와집이 모여 있는 청계천 언저리. 

황정,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는데, 음악 소리가 들린다. 

황정, 소리가 어디서 들리나 하는데... 


21. 유희서 집 앞 (낮)


잘나가는 역관의 집답게 으리으리한 고대광실인데...

안에서 바이올린, 벤조, 아코디온의 합주로 ‘오, 수재너!’가 들려온다. 

황정, 벽을 끼고 걸어오다가 대문 앞에서 거지 아이들에게 바구니에서 하얀 알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어미새에게 먹이를 달래는 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아이들... 석란, 입 속에 알사탕을 하나씩 쏙쏙 넣어주는데...


석란:(나눠주며) 서양엿인데, 입에서 살살 녹여 먹어야 한다. 깨물지 말고. (입에 넣어주다 멈칫) 언년이 넌 받았잖니.

거지소녀:(입 다물고 고개를 젓는데 볼이 사탕 때문에 튀어나와있고) ....

석란:(웃으며 볼을 쿡 누르며) 이건 뭐니? 다 같이 사이좋게 먹어야 하는 거야. 자, 다음은 한생이.... (넣어주다 황정을 보며 환하게 웃는) 


황정,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이면... 


도양:(황정 옆을 지나가며) 석란아...

석란:(활짝 웃으며) 도련님, 오셨어요? 


도양, 다가오면 이들을 슬금슬금 뒷걸음질쳐 가버리고....


도양:(웃으며) 너 마음 씀씀이 큰 것도 병이라 했지? 

석란:캔디가 많이 들어와서요. 전 단 거 잘 안 먹잖아요. (하나 꺼내들며) 하나 드실래요?

도양:됐다. 나도 단 거 싫다. 들어가자. 

석란:네... (다정하게 들어가는데) 


황정,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도양과 석란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데... 

순간, 누군가 발로 황정을 밀치듯 걷어차 벽 쪽으로 밀려난다. 


제욱:천것이 어디서 얼쩡거려! (들어가고)


황정, 고개를 조아렸다가 천천히 따라들어가는데...


21. 유희서 집 마당 (낮)


들어오는 황정,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이 쩍 벌어진다. 

악기를 연주하는 외국인이 있고, 그 앞에 춤추는 외국인들도 있다.

한쪽 긴 테이블에 뷔페식으로 떡을 비롯한 한식과 샐러드 같은 양식이 어울려 놓여있고, 조선인과 서양인이 웃으면서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다.

근처에 작은 테이블에 삼삼오오 앉아서 식사를 하는 남녀들, 그리고 또 한쪽에선 커다란 오크통에서 브랜디를 따라서 내기하듯 마시는 서양인들이 있다. 

황정, 몸을 수그린 채 부지런히 시선을 돌리며 보고 있는데...


칠복E:거서 뭐하냐?

황정:(화들짝 놀라) 네, 저.. 고기를 가져왔습니다요. 

칠복:따라와라. 


황정, 칠복을 따라 부엌 쪽으로 걸어가면서 연신 뒷눈을 주고..


유희서E:전체신론이요?


22. 동장소 (일각) 


도양, 유희서, 석란과 대화 중인데... 

그 뒤로 서양인들과 잔을 부딪치고 술을 마시는 제욱이 보인다. 


유희서:그 책은 왜 찾으십니까?

석란:의원이라도 되실 생각인가 보죠, 뭐.

유희서:(주의 주듯) 석란아.

석란:(씩 웃고는 근처 다른 외국인과 대화하러 가고) ...

도양:제 것은 잃어버렸거든요. 

유희서:(가만히 보다) 서의학에 너무 심취하시는 거 아닙니까? 성균관에서 흘러나온 얘기가 제 귀까지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형판 대감께서 아시게 되면...

도양:(웃으며) 유역관님마저 잔소리를 하시깁니까? 걱정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 지금처럼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유희서:(가만히 보다) 얘, 석란아...

석란:(외국인과 얘기하고 있다가) 네! 

유희서:광에 가서 도련님 책 좀 찾아드려라.

석란:네. (하곤) 도련님... 


도양, 인사하고 석란을 따라가는데 

유희서, 다소 걱정스레 보는데...

도양, 석란을 따라가는데 제욱, 양손에 술잔을 든 채 짠 가로막는다. 


제욱:(잔 건네며) 부란뒤란 양주인데 한번 마셔봐라.

도양:너나 마셔. (손을 치우고 가는)

제욱:짜식... 사실 주기 아까웠다. (한 잔을 마시곤) 크... 속이 쩔쩔 끓는구나. (다른 한 잔 마시곤) 크... 조옷타!


24. 부엌 앞 (낮)


부엌 밖, 뒤집은 솥뚜껑을 올려놓은 장작불 화덕들에서 전과 부침을 부치는 하인들.

그 옆에 빈 솥 앞에 뾰로통해 있는 서양인 요리사 한 명. 

부엌에서는 하인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내가고 들어가고 있다. 


석란모:(서양인의 눈치를 보며) 소를 키워서 잡나? 고기를 시킨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와? 

서양녀:(답답한) 코기... 코기... 없어요. 

석란모:(서양녀를 보다가) 막생! 막생!

막생E:마님, 고기 왔어요! 


막생, 황정의 지게를 잡고는 잡아끌듯하며 다가온다. 뒤에 칠복이 따르고...

고개를 숙인 황정, 지게를 벗어 고기를 내리고...


석란모:어디 보자. 


황정, 고기 보자기를 공손히 건네면 막생이 받아 보자기를 펴본다. 


막생:(붉은 안심을 보며) 싱싱하네요. 

석란모:(요리사 보며 손짓하려다 주저하며) 석란이가 뭐라 그러라 했지? 

막생:‘고만’이요. 고만.

석란모:(아.. 하곤 손짓으로 오라고 하며) 고만! 고만!

서양녀:(갸웃거리다) 오! 컴온?

석란모:(끄덕이며) 응. 그래. 고만! 


서양녀, 다가와 고기를 받은 뒤 막생이 소기름으로 문지르고 있는 솥뚜껑 위에 척척 올려놓는다. 치익! 하고 고기 익기 시작한다. 

막생, 칠복 등 다가와 쪼그려 앉고.. 황정, 지게를 지고 돌아가려는데....


칠복E:이게 수택기란 건가요?

황정:수택기? (돌아보는) 

서양녀:예스. 스테이크. 

석란모:(다가가고) 근데 양귀들은 왜 고기를 설익혀 먹는다냐? 비리지도 않나? 


서양녀, 콧노래 부르며 후추통을 들고는 슥슥 돌려서 후추가루를 낸다. 

석란모, 막생, 칠복 동시에 코를 벌름거리고 재채기를 하려고 하고, 의아한 황정 목을 길게 빼고 보는데....

거의 동시에 가마솥 고기에 재채기를 하는 세 사람! 


서양녀:오! 마이 갓! 


막생, 칠복, 민망해하고, 석란모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데....

황정, 재밌다는 듯 보다가 돌아서 가는데...


23. 마당 (낮)


황정, 지게를 지고 돌아가다가 멈춰서 보는데...

음악이 스위스 민요 오, 브레넬리로 바뀌고, 흥겹게 춤추는 서양인들.

그들 중에 제욱은 서양인과 잔을 부딪치며 원샷하고 있다. 


24. 광 (낮)


보물 창고 같은 광. 지구본, 자전거, 망원경 등등 보이고... 

석란, 궤짝들 사이에서 전체 신론을 찾는 중이다. 


석란:어딨었더라... 


도양, 지구본을 손가락으로 돌려보다가 망원경을 발견하곤 집어 든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면 망원경 시점으로 석란이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인다.

신기한 도양, 제대로 보면 석란의 책 찾는 모습이 가깝게 보이고...

도양, 3단 망원경 길이를 줄였다 늘여다 하면서 계속 보고...

석란의 사이즈가 줄었다 늘었다 한다. 어느 순간 가장 선명한 상이 보이면...

책을 찾은 석란, 눈치를 챈다. 


석란:(돌아서서) 자꾸 그렇게 보실 거예요?


도양, 망원경 시점으로 계속 석란을 쫓으며... 


도양E:너 보는 거 아냐. 망원경 성능이 좋은가 본다. 


망원경 시점의 석란, 밉지 않게 흘기곤 책을 들고 도양 쪽으로 다가온다. 


도양:(보면서) 좋은데... 역관님께 하나 달라해야겠다. 

석란:(망원경을 뺏는) 이건 제꺼거든요?

도양:(웃으며) 아, 그래?

석란:(책을 건네며) 책이요. 

도양:(받으며) 고마워. 

석란:(빤히 보고)....

도양:(왜 그러나 싶고) ....?

석란:비켜주셔야 제가 나가죠.

도양:싫다면?


석란,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씨익 웃곤 뒤돌아 걸어가고...

도양, 피식 웃는데...


25. 마당 (낮)


음악 소리가 멈추고 사람들 돌아본다. 

악단 앞에 한복 차림을 한 독일인 목인덕이 사람들을 향해 서있다.


목인덕:레이디 앤 젠틀맨.. 어텐션 플리즈! 오늘 파티를 베풀어주신 유


희서 역관님께서 한 말씀하시겠습니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 유희서, 중앙으로 걸어 나오면, 제욱 비틀거리며 비켜준다. 


유희서:(영어로) 우선 이렇게 찾아주신 각국 공사관들과 가족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타국 조선에 오셔서 고생하시는데, 서로 알고 지내면서 친목을 다지시라고 조그마한 잔치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차린 건 없으나 많이 드시길 바랍니다. 

목인덕:자, 우리 모두 건배 합시다. 치얼스!

다들:치얼스!

제욱:(비틀대며) 건배! 


제욱, 술잔을 부딪치고 마시다가 그대로 고목나무 쓰러지듯 쿵 쓰러진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비명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는데...

황정, 놀라서 보면 제욱, 팔과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데...


유희서:(환자 앞에 앉아서 보고) 와타나베 상! 와타나베 상! 


구경꾼들, 와타나베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고... 

구경꾼들 사이를 뚫고 나타난 와타나베, 왕진가방을 놓고 제욱을 살핀다.

황정, 문득 푸줏간 주인의 말이 떠오른다. 


푸줏간E:서양 의술을 하는 자라지 아마. 왜놈인데 칼로 살을 째고 꿰매고 한다는 거 보면, 우리 하는 일하고 도진개진이지 뭐.


황정, 지게를 내리고 다가와 고개를 빼고 보기 시작한다. 

와타나베, 제욱의 기도를 확보하고 숨을 쉬나 귀를 대본다. 이어 딱성냥을 꺼내 구두에 문질러 켜면,

황정, 눈이 휘둥그레지고... 

와타나베, 제욱의 눈동자가 불빛에 움직이나 보고...

황정, 고개를 이리저리 빼면서 점점 다가간다. 

와타나베, 이번엔 주사기와 약병을 꺼내더니, 약을 넣어 주사를 한다. 주사기의 액체가 점점 사라지며, 경련이 점차로 멈추는 제욱...

황정,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얼빠진 듯 보고 있는데...


26. 유희서집 일각 (낮)


석란, 걸어가는데 책을 옆구리에 낀 도양이 따라와 말을 건다. 


도양:만약에 말이야... 내가 양의원이 되겠다하면 어떨 거 같아? 너도 반대야? 

석란:제가 도련님이 하시는 일에 반대하고 말고 할 자격이나 있나요?

도양:넌 자격이 되지.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반대를 한다면 한번 고려해볼 생각이야. 

석란:(조금 놀라 보다가) ...진정이세요? 

도양:그래. 질문에 대답 좀 해보거라. 반대냐 아니냐?

석란:반대에요.

도양:(실망하곤) 정말이냐?

석란:여인네의 맘으로 결정될 일이라면 일찍이 관두시는 게 좋지요.

도양:(진지한) 그저 네 맘을 떠보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이다. 

석란:그래도 반대에요...

도양:(얼굴 어두워지고) ... 

석란:도련님 댁에서 가슴 아파할 생각을 하면... 반대할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미소 지으며) 도련님 하나만 놓고 생각한다면... 찬성이에요. 

도양:(그제야 화색이 도는) 그래. 너라면 그리 답해줄 줄 알았다. 

석란:국법이 반상을 구별한다 해도... 전 사람을 살리는 일에 귀천을 따져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헌데 한의도 아닌, 양의가 되시겠다하니 진정 깨어 있는 분이세요. 

도양:(좋아서)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석란:(질투난다는 듯) 치... 맘만 먹으면 벼슬로 나가도 되고 양의원이 되도 되고... 저두 여자로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도양:(미소 짓는데) ... 


칠복E:도련님! 


도양과 석란, 무슨 일인가 보는데...


27. 마당 (낮)


와타나베, 멍하니 앉아있는 제욱의 머리 상처에 양주를 부으면...

만취상태인 제욱,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오 수재너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다.


제욱:(아프고) 아... 따궈! (하곤 다시 오 수재너 흥얼거리고) 

유희서:마취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와타나베:(바늘에 실을 꼽으며) 만취 상태라 마취하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죽습니다. (머리를 꿰매기 시작하고)

제욱:아.. 따꿔... (하곤 다시 오 수재너 멜로디)


황정, 경탄하며 보고 있는데... 


도양E:제욱아! 


황정, 돌아보면... 도양과 석란, 다가온다. 


도양:어찌 된 일입니까? (상태를 살피고) 

유희서:외국인들과 술내기를 했답니다. 

석란:어머! 사람 살을 꿰맨다고는 들었지만 머리에다도 이렇게 하나요?

와타나베:소오데쓰. 머리가죽도 사람의 피부나 마찬가집니다. 

도양:(끄덕이며 와타나베를 보면) ...? 

유희서:아, 일본 공사관 병원에 계신 와타나베 의원이십니다. 

도양:(놀라는) 혹시... 한성순보에 실린...대일본제국의 희파극랍저(자막-히포크라테스)라 불리시는 분이 아닙니까? 

와타나베:부끄럽습니다. 핫핫핫...

도양: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황정, 뭔가 확신이 선 듯 와타나베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다. F.O


INS) 황정의 집 (저녁)


황정모E: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28. 황정네 방 (저녁)


가죽신 완성품과 가죽, 칼, 송곳, 바늘 등등이 펼쳐져 있고..

황정, 가죽신에 바느질을 하는 자세로 멍하니 있고...


황정모:(누워있다 몸을 일으키며) 소근개야!

황정:네? (하다 손을 찔린 듯) 아아... 왜요, 엄니?

황정모: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냐고? 콜록, 콜록.... 

황정:아... 엄니, 오늘 아주 신기한 걸 봤어요. 

황정모:신기한 걸 보다니? 

황정:글쎄, 어떤 의원이 죽을 뻔 한 사람을 살리는데... 신기하게 손에서 불이 나오고... 침으로 몸속에 물약을 넣고... 또 사람 머리가죽에다 바느질까지 하더라구요. (다시 꿰매기 시작하고)

황정모:별 해괴한 소릴 다 듣겠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 병을 낫구겠니? 콜록, 콜록... (하다 입을 막으면 피가 묻어나고 황정이 볼세라 슬쩍 치마에 닦는데) 

황정:(돌아보며) 봤다니까요? 

황정모:(당황하며) 그, 그래... 니가 어디 거짓말을 하겠니?

황정:저 위 남산 아랫목에 양의가 있는 병원이 있대요. 언제 한번 엄니를 보여 봤으면 좋겠던데... 

황정모:이그... 난 됐다. (손을 뻗어 황정이 만든 가죽신을 집으며) 이제 니가 다려준 약 먹고 다 나을 건데... 뭐하러 그러니? 

황정:네! 꼭 나으실 거예요. 

황정모:(가죽신 보이며) 이거 네 솜씨가 이젠 에미보다 나은 거 같다. 

황정:에이... 그럴 리가요! 누가 엄니 바느질을 따르겠어요. (웃는데)

무녀E:이러니 백약이 무효지...


황정, 무슨 소린가 싶어 보는데...


29. 황정의 집 마당 (저녁)


황정, 문 열고 나와 보면 황정부와 함께 온 무녀, 집을 둘러보고 있다. 


무녀:(아무데나 가리키며) 여기도 있고, 요기에도 있고... 저기 지붕에도 보이네... 이렇게 잡귀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여지껏 살아있는 게 용하지. 용해. 

황정부:어찌 하면 좋겠수?

무녀:어떡하긴... 천귀를 벗겨내고 대신물림을 해야지. 


30. 황정네 방 (저녁)


황정부가 들어와 문갑을 뒤지면 황정이 뒤따라 들어와 만류한다. 


황정:아부지, 속임수에요. 굿해서 살아난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세요? 돌돌이 아부지도 죽었고, 개똥이 형도 죽었어요.

황정부:(뒤지며)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

황정:(답답한) 아부지...

황정모:소근개 아부지... 괜찮아요. 난 안해도 돼요. 

무녀:(방 안을 얼굴 디밀고) 에고... 무시라... 잡귀하고 한 이불 쓰니 어디 병이 잘도 나가겠다. 자칫하면 줄초상 치르겠어.

황정모:(겁먹고) ... 

황정:(화나고)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무녀: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 눈에 보이니까 하는 소리지. (황정을 보곤) 쯔쯧... 니 에미 푸닥거리 하고나서 너도 굿 한번 해야 쓰것다. (얼굴 빼며) 일없으면 나는 가요. 

황정부:(돈꾸러미 복주머니 들고 나가며) 가긴... 이보게 천녀...천녀...

황정:(얼른 뒤따라 나가는데) ...